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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3.15 청년장군 경대승의 "억강부약 적폐청산 개혁정치"
문화교육2018. 3. 15.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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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本貫)은 청주(淸州)이며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를 지낸 경진(慶珍)의 아들이다. 15세에 음서(蔭敍)로 교위(校尉)가 되고, 뒤에 장군의 지위에 올랐다. 아버지인 경진(慶珍)이 권세를 이용해 남의 전지(田地)를 많이 빼앗았는데, 아버지가 죽은 뒤 부정한 재산이라며 전지 문서를 모두 선군도감(選軍都監)에 헌납하고, 청렴한 생활을 하였다. 


1178년 충주(忠州) 사람으로 개경(開京)에 적(籍)을 두고 살다가 청주(淸州)로 내려온 사람과 청주(淸州) 토착인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 사상자(死傷者)가 발생하자, 청주(淸州)의 사심관(事審官)으로 그 일을 해결하지 못했다는 책임으로 박순필(朴純弼)과 함께 파면되기도 하였다. 


무신정변으로 권력을 장악한 무신(武臣)들이 횡포와 비리에 분개하여 정중부(鄭仲夫)와 그의 아들인 정균(鄭筠)을 제거하려 했다. 1179년(명종 9) 9월 허승(許升), 김광립(金光立) 등 무사 30여 명과 함께 정중부(鄭仲夫)와 그의 아들 정균(鄭筠), 사위인 송유인(宋有仁) 등을 죽이고 조정의 실권을 장악했다. 명종(明宗, 1131~1202)은 정균(鄭筠)이 차지하고 있던 승선(承宣)의 벼슬을 주려 하였으나 경대승(慶大升)은 문관(文官)이 맡아야 한다며 이를 사양하였다. 그리고 무신정변 세력을 제거하여 중방(重房)을 무력화시키고, 무신정변 이전의 상태를 회복하기 위해 문관(文官)과 무관(武官)을 고루 등용하였다. 신변 보호를 위해 도방(都房)을 설치하였고, 무신(武臣)의 동정을 감시하고, 유언비어(流言蜚語)를 엄격히 단속하였다.


정중부(鄭仲夫) 일당을 제거하는 데 공을 세운 허승(許升)과 김광립(金光立)이 폐단을 일으키자 1180년 이들을 제거하였고, 문관(文官)과 무관(武官)을 가리지 않고 비리를 저지르는 자를 처벌하며 조정의 질서를 회복하려 했다. 하지만 1183년 30살의 나이로 병사(病死)하였고, 그가 죽은 뒤 도방(都房)은 해체되고 경주로 내려가 있던 이의민(李義旼, ?~1196)이 개경으로 올라와 실권을 장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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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장군 경대승의 "억강부약 적폐청산 개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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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주평화뉴스_대표기자